지난 시간에 우리는 『자본의 한계』(1982)가 나오게 된 배경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았어요.
이번 시간에는 『자본의 한계』의 서문을 조금 다뤄볼까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약간은 죄책감이 느껴져요. 사실 하비 교수의 생각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그냥 그의 책을 읽는 것이에요. 2023년 지금 시점에서 『자본의 한계』는 절판되어서 이제 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운 좋으면 중고 서점에서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 정성이 있다면 무료로 pdf가 풀려 있어서 영어로 된 원본을 직접 읽을 수도 있어요.
최병두 교수님의 번역이 훌륭하기로 유명하지만, 원서로 읽어보는 것도 훌륭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built environments라는 표현이 있는데 최병두 교수님 번역본에는 '건조환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비 교수는 s를 붙여서 복수를 썼어요. 하비는 '건조 환경' 일반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교량, 도로, 아파트 등 구체적인 하부구조물들을 떠올리기를 기대했을 수도 있어요. 이런 차이를 보는 점이 원서를 읽는 맛이죠. (하지만, 그리 쉽지는 않을 거에요.)
이것이 이 책을 쓰고, 또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르크스나 지리학에 대한 선행 지식이 없으면 하비 교수의 글은 너무 어렵거든요. 마르크스만 알고 지리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책을 오해하는 경우도 보았어요. 하비 교수의 히트작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은 그의 저작 중 가장 쉬운 책으로 유명한데, 그 글조차 쉽지는 않아요. 하비 교수의 엄청난 독서량과 문화적 소양으로 인해서, 수많은 화가, 소설가, 철학자들을 언급하면서 지나가거든요. 그 궤적을 다 이해하면서 지나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물론 저도 다 이해할 수 없어요. 어려운 책을 읽을 때, 제가 가진 방법은 그 사람이 되어 보려고 하는 거에요. 물론 그 책의 모든 구절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해보면 그 책이 이해가 될 것도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하비 교수의 인생 궤적을 구구절절이 설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첫번째 문단에서 하비 교수는 곧 바로 『사회정의와 도시』를 언급합니다. 길게 설명하지만, 짧게 말하자면, 마르크스와 도시화 과정을 연결시키는 데 있어서 『사회정의와 도시』는 부족했다는 것이에요. 마르크스를 더 공부하면서 그는 아직도 많은 주제들이 다뤄지지 않았고, 그래서 '자본주의와 도시'를 연결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빈 상자들'(empty boxes)을 발견하게 되죠. 그는 빈 상자들을 하나씩 채워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단번에 다 채울 수는 없었다고 고백해요.
『사회정의와 도시』에서 그는 이미 전작에서 주목을 받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글에서 잠깐 다뤘듯이 마르크스 이론은 엄청나게 넓고 깊습니다. 심지어 마르크스를 다룬 만화를 보면 그가 온 몸에 털이 정말 많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미학, 철학, 문학, 영화, 예술 등 영향을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죠. 회사를 다니시는 분은 대부분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있을 텐데, 어쩌면 노동조합이라는 것이 이렇게 사회의 한 요소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마르크스의 영향이기도 해요.
마르크스는 정말 털이 많았죠.
하비 교수가 인정하듯이, 자본주의와 도시화라는 거대한 주제를 놓고 보았을 때, 그 작업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속속 모두 뒤져야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어요. 게다가 이미 말한 것처럼 마르크스는 평생 원고를 쓰고 살았어요. 대학자에게 이렇게 표현하기는 그렇지만, 그의 관심사는 정말 깊고, 다양하고, 때로는 산만하고 정리가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정리해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사실 많은 마르크스의 원고는 프리드리히 엥겔스에 의해서 편집되어 출간되었어요. 그러니까 마르크스는 아이디어를 엄청나게 생산해내고, 그것을 엥겔스가 책으로 만들어 주는 격이었죠. 마르크스는 엥겔스가 얼마나 믿음직스러웠는지 자신의 아이디어를 책으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기 까지 해요. 그래서 나온 책이 바로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1884)입니다.
하비는 마르크스가 국가론, 국제무역, 위기론 등을 완성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그는 특히 자본론 3권, 잉여가치학설사, 그리고 요강(그룬트리세, Grundrisse)에 흥미를 가지고 일반이론을 구축했다고 설명합니다. 말하자면, 『자본론』이 이루지 못한 ‘자본주의와 도시화’라는 일반이론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이지요? 어떤 툴로? 마르크스가 사용했던 바로 역사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을 사용하겠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하비는 역사유물론에서 '역사' 부분을 과감하게 줄이고 '일반이론'처럼 서술하겠다고 공언해요. 왜냐하면 역사적 증명까지 모두 시행하면서 '빈 상자'를 채우기에는 너무나 갈길이 멀기 때문이에요. 이런 서술이 '환원주의'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는 이렇게 하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 참고로 환원주의(reductionism)란 마르크스에게 가해지는 일반적인 비판으로서, 마르크스가 모든 문제를 경제 문제로 환원한다(reduction)는 뜻이에요. 그 간의 논리적으로 해결해야 할 점들을 무시한다는 뜻이죠. 한 마디로 안 좋은 말이에요.
이전 글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역사유물론은 인류 역사의 물적 토대를 분석함으로써 사회를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마르크스가 제안한 역사유물론에 따르면, 인류 역사는 하부구조, 즉 경제가 움직이면서 만들어내는 역사입니다. 하부구조가 변하면 그 충격이 누적되다가 상부구조가 와르르 무너지면서 새로운 체계가 탄생하죠. 이런 과정을 혁명(revolution)이라고 표현합니다. 진화(evolution)과 어딘가 닮아 있지 않나요? 마르크스는 실제로 역사유물론을 구축하면서 불세출의 자연과학자, 찰스 다윈의 영향을 받았다고 어디선가 얘기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를 마르크스는 ‘혁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어 고대 노예제에서 생산량이 증대하자, 노비들을 거두어 먹여살리는 방법이 아니라 계약에 근거한 중세 봉건제로 체제가 변화하게 됩니다. 마르크스 입장에서는 자본주의도 더 생산량이 증대되면 뭔가 폭발이 일어나서 다른 형태의 사회구조로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것이 여러분이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메니페스토!, 즉 ‘공산당 선언’의 내용입니다.
저는 하비 교수의 이 언급이 아주 멋있다고 생각하는데 들어보세요. 이 문장은 변증법의 핵심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나는 선험(a priori)처럼 엮어내는 것보다는, 문답법(methods of both enquiry and presentation)이 텍스트를 통해서(through texst)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을 선호한다.(Harvey, 1982, 서문 15page)
문답법? 어디선가 많이 듣던 단어 아닌가요? 바로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이에요. '변증법'(dialectic)이라는 개념 자체가 원래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에서 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돼요. 우리는 변증법이라고 하면 '정-반-합'만 기억하고 있지만, 원래 이 개념은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을 교육하는 방법이었어요. 이것 저것 물어보고 대답하면서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하는 방식이죠. 우리가 아는 '정-반-합' 변증법은 헤겔의 작품이에요. 마르크스가 이를 일부 수용한 것이죠.
선험? 어디에서 많이 듣던 말이 아닌가요? 바로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우죠. 칸트의 용어에요. 선험적 지식이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알고 있는 그런 종류의 기본적인 관념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즉 시간과 공간 같은 것들이죠. 아 참! 여기서 또 ‘공간’이 나오네요. 나중에 시간에 되면 칸트의 관념론적 공간론이 하비의 역사유물론적 공간론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워요. 실제로 하비 교수님도 이 주제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었어요. 요컨대, 칸트의 공간론이 선험(a priori, '아프리오리' 라고 읽습니다) '조건'으로서의 '공간'이라면, 하비의 역사유물론적 공간론은 '공간생산론'에 근거한 생산할 수 있는 공간, 즉 변증법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공간이죠. 이 문제는 나중에 조금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하비 교수의 위 문장은 역사유물론의 핵심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이 책의 서술에는 매우 신중한 구석이 있어요. 1~7장까지는 빠르게 마르크스의 핵심을 정리해내고 8장부터 13장까지는 마르크스의 생각을 연장하고, 공간에 적용하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예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자본의 한계』의 백미는 1장부터 7장까지, 그 중에서도 2, 3장이 좋다구요. 보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앞 장의 서술은 매우 압축적이고, 정교해요.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오해를 사지 않으면서도, 『자본론』을 요약해야 하기 때문이에요. 만약 하비가 『자본론』을 오독하기라도 했다면, 반대론자들이 그를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거든요. 그래서 그는 1장부터 7장까지 기존 『자본론』 논의를 충분히 숙고하여 정리합니다.
그리고 나서 금융(finance, 9, 10장)과 지대(rent, 11장)를 다룬 후 12장과 13장의 서술로 넘어갑니다. 하비는 12장과 13장에서만큼은 추상적으로 서술하기 보다는 각 국면에서 일어나는 일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했다고 해요. 왜냐하면 1장부터 7장까지는 『자본론』을 이해하기 위해 주마간산격으로, 하지만 정교하게 서술해야 했다면, 12장과 13장은 어쩌면 이 책의 핵심이기도 하거든요. 하비가 주장하고 싶었던 것은 마르크스의 이론은 결국 공간이론으로 확장되어야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 완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하늘나라로 갔기 때문에 하비는 마르크스가 남긴 숙제를 풀어준 셈이 되겠네요. 물론 어떤 이론이든 실천과 이론에서 더 보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하비는 인지합니다.
이렇게 보면 The Limits to Capital 이라는 제목이 예사롭지 않게 들릴 거에요. 『자본의 한계』는 '자본'이 가진 속성의 한계라는 뜻이 될 수도 있고, 『자본론』의 한계(그가 '빈 상자들'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한 것으로도 읽힐 수 있어요. 하비 교수는 중의법을 종종 사용하는데, '공간적 조정(spatial fix)'도 그 중 하나입니다. fix란 '고치다'라는 뜻과 '고정'이라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거든요. '조정'이라는 번역은 두 가지 의미를 다 담지는 못하지만, 한국어와 영어가 100% 일치되지는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절충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요약하자면, 하비 교수는 『사회정의와 도시』에서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과 자본주의 공간론을 접목하려고 시도했어요. 이미 여러 번 언급했듯 이 시도는 완전하지 않았고, 하비 교수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거대한 사상 체계 안에서 도시이론을 만듭니다. 다시 한 번 ‘자본의 한계’라는 제목(Limits to Capital)이라는 제목이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하비는 마르크스의 사고와 방법론을 가져와서 그 방법론으로 말미암아 자본주의와 도시 그리고 나아가서 공황론과 금융이론까지도 일반 이론화하려는 시도를 했던 겁니다.
이와 같은 시도는 과연 성공적이었을까요?
이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