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David Harvey] 광화문 광장은 서울시장의 ****이다?(공간의 변증법, 재현의 공간, 공간의 재현, 공간 실천)

2024-12-01 02:18:11 | 조회수: 15 | 좋아요: 0

지난 글에서는 하비 교수가 1848년 이후 파리에 대해서 왜 흥미를 가졌고, 그 내용이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에 어떻게 녹아져 있는지 살펴보았어요. 1840년대는 아일랜드 감자 풍토병으로 인해 대기근이 휩쓸고 간 시기였고, 부르주아지들은 인플레이션과 불황에 시달렸어요. 이에 파리(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에서는 시민혁명이 일어나 정권을 교체하지만, 사람들은 나폴레옹 향수병 때문인지 그 조카를 대통령에 앉힙니다. 당선된 루이 나폴레옹은 친위 쿠데타(비록 합법이라 하더라도)를 일으켜 정권을 휘어잡은 후 파리 대 개조에 나서게 되죠. 이 때 등장하는 사람이 바로 '오스망 남작'이었고, 오스망은 르꼬르뷔제(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라 불리우죠.)와 더불어 '근대' 도시계획의 상징 같은 인물이 되죠. 이것은 '모더니티'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1848년은 모더니티, 즉 근대성이라는 것이 출발하는 것의 원년쯤 되는 격이죠. 역사는 좀 특이하게도 특정한 해에 아주 중요한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는 경향이 있어요.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의 경우 1948년에 엄청난 일들이 다 일어납니다. 이 해는 제주도 4.3항쟁(그로 인해서, 여수, 순천 반란 사건도 있었죠.)이 있었던 해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헌법이 제정되고, 정부가 수립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할 때는 어쩌면 이렇게 한 해에 중요한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유럽 역사를 보면 1848년 혁명이 그랬어요. 이미 설명한 프랑스의 시민혁명(2월혁명)을 비롯해서,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그렇게 격렬하진 않았죠), 독일에서는 3월혁명이 일어났고, 이탈리아 혁명은 나중에 이탈리아라는 통일국가가 세워지는 계기가 되죠. 데이비드 하비 교수는 이 시기에 얼마나 매료되었는지, 나중에 이 시기 파리를 다룬 책을 내는데 그 책이 바로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입니다. 이 책은 나중에 다룰게요.

자, 우리는 다시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이미 우리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을 이 글에서 요약했었어요. 심지어 하비 교수는 본인의 주장을 첫페이지에 몇 개 문단으로 요약해놓기까지 합니다. 그의 요약은, 책의 번잡한 내용과는 달리, 한번쯤 이해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것은 1970년대라는 시기에요. 이 시기에 대해서도 이미 여러 차례 다룬 적이 있기 때문에 넘어가겠습니다(68혁명의 철학적 배경, 68년 이후 불안한 평화,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데이비드 하비는 1973년에 주목합니다(서문에서는 1972년경부터라고 되어 있어요). 1973년에 전 세계 경제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은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에요. 이 사건은 통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금 1온스당 35달러에 바꿔주기로 한 '브레튼우즈 협정'의 약속을 못 지키겠다고 미국이 선언한 사건이에요. 이로서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예전에는 (금)<->(달러)라는 교환관계를 고정시켜놓았다면, 이제는 전 세계 화폐가 순수하게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만 달러와 교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여전히 '달러'는 기축통화, 즉 전 세계의 표준 화폐로 남아있게 되죠. 이 게임은 어딘가 이상하죠.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은 자신들의 고유 화폐가 언제 휴지조각이 될 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오직 미국만이, 달러가 필요하면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는 특권이 생겨난 것과 다름이 없었어요. 여기에서 우리가 다뤘던 가치문제가 다시 발생을 하게 됩니다.

마르크스는 시장가격과 가치를 구분했어요. 시장가격이란 일시적인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너무 왔다갔다 하는 변덕스러운 녀석이거든요. 이걸 전문 용어로 휘발성(volatility)이라고 합니다. 역자들은 이 단어를 '즉흥성'(volatility, 348)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여하간 이 단어는 시장가격이 쉽게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면서 그것이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해요. 이것을 '시장 가격'(market value)라고 한다면, 마르크스는 이것과 상품의 가치(value)를 구분해낸 것이죠. 왜냐하면 가치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나중에 그 유명한 '전형'(transformation)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서 엄청난 쌈박질이 일어나고, 또 온갖 수학자와 경제학자가 동원되어 이 문제를 풀려고 했지만, 결론은 시장가치와 노동가치를 일관적으로 설명해낼 방법은 없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주관적 효용론'이라는 것까지 등장하게 되죠. 즉, 가치란 것은 '그 사람이 그 사물에 대해서 평가하는 주관적 가치'에 의해서 정의된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결국 주관적 효용론에 근거한 효용가치론의 세계로 넘어오게 됩니다.

오늘날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대체로 효용가치론을 전면 내세우고 있죠. 마르크스 학파에서는 '가치'와 '가격'을 완전히 다른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효용가치론이 노동가치론을 대체할 수 없다고 간주합니다. 하지만, 결국 자본가는 시장에서 '가격'과 '수량'으로 거래하기 때문에 이 둘의 합인 매출이 가치보다 높은 경우에만 이득을 챙길 수 있어요. 결론적으로 둘을 완전히 분리해버리면 자본주의의 모순이니 하는 말도 다 엉터리가 되어버린다는 것이죠. 아니, 가격이 가치보다 낮으면, 잉여가치니 뭐니 하는 것이 없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아무튼 이것은 '창조론'과 '진화론'만큼이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논쟁이니, 제가 어느 한 쪽 편을 들지는 않겠습니다.

아무튼 하비는 1973년을 계기로 하여 자본주의가 한 풀 꺾였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책이 나온 시기에 주목해요. 이 책의 초판은 1989년에 발행되었습니다. 이 책이 나온 후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어요.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지 모르지만, 냉전의 팽팽한 기싸움이 무너진 것이었어요. 소비에트 연방도 해체 수순을 밟았어요. 하비 교수가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을 출간한 해는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에 항복을 받아낸 시기와 거의 일치해요.

하비 교수는, 이것도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중국에 관심이 많은데, 중국은 이미 '덩사오핑' 때부터 '흑묘백묘'(검은 고양이나 흰 고양이나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실용주의)라는 유명한 말을 통해 경제부문은 사실상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덕분에 중국은 지금까지도 경제는 자본주의, 정치에서는 공산주의 실험을 아직도 계속하고 있죠. 중국은 지금도 완전 변동환율이 아니라 관리변동환율제를 채택하고 있죠. 앞으로 미국과 중국이 어떤 관계를 맺을지가 세계사의 초미의 관심사이기는 합니다.

하비 교수는 1973년 이후의 자본주의의 변동 시기(상투적 표현이기는 한데, 이보다 나은 표현을 못 찾았어요)가 포디즘에서 유연적 축적으로 가는 '전환'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느슨하게, 혹은 직접적으로 이러한 경제변동이 '포스트모더니티'라는 특수한 문화조류를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을 고찰하면서 하비는 "시간에 의한 공간의 소멸"(annihilation, 절멸, 혹은 괴멸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을 주목합니다. 그리고 그 철학적 의미에 대해서도 심층적으로 따지죠. 대략적으로 이해해보자면, 뉴턴시기의 절대성을 지닌 공간이 아인슈타인의 상대공간으로 진화하고, 1973년을 지나 포스트모더니티의 공간으로 진화했다는 식의 설명입니다. 방금 제가 한 요약은 너무나 과감해서, 하비 교수가 동의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이해하기로는 하비 교수는 공간의 의미가 그런 방식으로 진화해온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하비 교수는 앙리 르페브르의 '공간 생산론'(La production de l'espace, 1974)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공간은 '물질적 공간의 실천', '공간의 재현', '재현의 공간'이라는 세 층위로 나눕니다. 이것도 결국은 '재현'(representation)을 이해해야 알 수 있는 거에요. 재현의 기본틀은 위 글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아래와 같습니다.

이 그림은 사실 서양철학의 거의 대부분(혹은 전부)를 설명할 수 있고,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며, 여러분이 앞으로 어떠한 글에서도 representation(재현, 표상, 대표, 대의)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 쫄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그림이므로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앙리르페브르나 하비는 변증법을 선호해요. 그래서 저 그림처럼 A가 B가 되었다가 다시 B가 A가 되고, 또 그런 B가 B' 혹은 C를 낳는 사고에 아주 익숙해요. 가장 먼저 나오는 개념은 '물질적 공간의 실천'입니다(책을 읽다 실천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거의 90% 이상 practice의 번역어에요). 실제로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죠. 예를 들어 교통, 통신, 상품거래 등의 '사건'을 말합니다. 그것을 포착하거나 '기호'(code)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공간의 재현'입니다. 물질적인 공간을 다른 곳에 옮겨 적는것이죠. 즉, 도시계획가가 광장을 설계한다든지, 도심을 재개발하는 행위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여기까지 하면 위에서 A와 B가 무엇인지 알겠죠?

여기서 헷갈리면 안되는 게, A는 껍데기에요. B가 진짜입니다. A가 B를 의미한다(A represents B.)라고 했을 때는 A가 껍데기고 B가 진짜인 것처럼요. 예를 들어, "사과는 빨갛고 동그란 과일이다."라고 했을 때, 뒤에 나오는 말이 진짜 속 내용인 것이죠. 또, 정치인은 민의를 대변한다(politician represents people's opinion.)라고 할 때 진짜는 "민의"이죠, '정치인'이 아니라요. 그러므로 여기에서 '물질적 공간의 실천'은 A가 아니라 B가 됩니다. '공간의 재현'은 물질적 공간을 추상적 공간으로 옮겨놓는 행위를 의미하죠.

르페브르와 하비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C를 만들어냅니다. 즉, 공간도 무엇인가를 represent, 즉 재현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재현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거에요. 물질적 공간의 실천은 공간의 재현으로 이어지고, 공간의 재현은 다시 재현의 공간을 만들어냅니다. 이 삼각관계는 계속 빙빙빙 돌면서 서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재현의 공간의 사례를 들어보자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공간입니다. 즉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시(represent)하기 위해서 선택한 공간이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기념하고서 선택하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도시계획가의 설계(design)가 '공간적 재현'이라면, 시민들의 자발적 커뮤니티 형성이 '재현의 공간'이 되는 셈입니다. 예를 들어 광화문 광장이 서울 시장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공간의 재현이 된다면, 촛불집회하는 시민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재현의 공간이 되는 것이죠.


서울시장에게는 '공간의 재현'이고, 촛불집회 시위하는 사람들에게는 '재현의 공간'인 광화문광장에 대한 은유적 그림(AI 시켜서 직접 그림 주의)

하비가 앙리 르페브르의 공간생산론을 변화, 발전시킴으로써(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270) 앞으로 지리학자들이 공간에 대해서 참고할 만한 프레임워크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간략하게 설명했지만, 이 과정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하비 교수는 당연하게도 르페브르뿐만 아니라 하이데거, 니체, 하버마스, 바슐라르, 부르디외 등 수많은(정말 수많은) 학자들을 동원합니다. 존재(being)와 생성(becoming)이라는 하이데거의 용어도 동원됩니다. 고등학교 때 저는 하이데거를 나치에 협력한 철학자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부분도 살짝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구분법은 개인적으로 정교한 틀은 아니지만, 활용할만한 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더니즘과 자본주의에 찌든 뇌를 가지고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단선적'이고 '직선적'인 것을 선호합니다. '단순한 것이 진리'라는 '오캄의 면도날'을 신봉하며, 백마디 말보다 한 마디 수식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과 확률론으로 양자역학의 새 문을 열어젖힌 하이젠베르크 중 한 명과 친구를 하라고 한다면, 저는 아인슈타인과 친구가 될 확률이 높은 사람일 것 같습니다.

여전히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에는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이런 거에요. 포스트모더니티란 (숱한 조롱에도 불구하고) 결국 주류에 대한 저항이에요. 혹자는 20세기를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인종(race), 계급(class), 성(gender)이라고 말합니다. 개인 사생활을 들추기는 좀 그렇지만, 계급평등을 주창했던 마르크스는 매우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하녀가 있었고, 그 하녀와 혼외자가 있었어요. 그의 사상은 '계급'에 초점이 있었지만, 신체, 젠더, 인종 등의 문제는 여전히 맹점을 안고 있다는 비판이 있죠. 하지만 나중에 하비는 '희망의 공간'에서 마르크스적 사고를 확장하면, 신체(포스트모더니즘에서 정말 중요한 화두죠)의 문제를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는 나중에 페미니즘과 결합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가 꼭 인종, 성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적어도 마르크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던 건 맞아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숙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쟁난민으로 태어나서 망명생활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어렸을 적 상처 때문에 평생 괴로워하면서 살아갑니다. 세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 각자의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어쩌면, "각자 인생이 다른 거야."라는 말을 빙빙 돌려가면서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저는 포스트모더니스트가 아니지만, 만약 포스트모더니스트라면(이런 말이 말이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포스트모더니티'라는 말 자체가 틀렸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각자 다름을 찾자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인데, 그것의 공통 속성을 뽑아내서 "규정"(labeling)하고 판단(judge)하려고 하는 것 같거든요. 역시 다시 문제는 재현(represent)의 문제로 넘어옵니다. 포스트모더니티를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하비는 '73년 정치경제적 변동이라는 조건의 산물'이라고 이해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것 역시 포스트모더니스트 입장에서 별로 달가운 해석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본격적으로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에 대한 반론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since 2021
시공간 압축 대학원에서 살아남는 레시피 여행이 부르는 노래 파이썬 생활프로그래밍 질러 유라시아 발밑의 세계사

The source code is licensed 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