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David Harvey]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에 대한 반론(꿀벌의 노동과 인간의 노동)

2024-12-01 02:18:11 | 조회수: 14 | 좋아요: 0

맑스는 자본주의 모던화에 대해서 가장 최초로, 그리고 가장 완벽하게 설명한 사람이다(137).

지난 글에서 우리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에서 나타난 철학적 배경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요약하자면, 포스트모더니티는 '불가지성'(알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확실한 한가지 재현양식(mode of representation)은 없다고 전제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분은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 이론은 세상을 뭔가 설명해낼 수 있다고 강하게 확신하고, 그 확신으로 노동자들의 행동을 이끌어내고 싶어 합니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반론들을 극복해낼 수 있어야겠죠.

위 인용구에서 하비 교수는 137페이지에서 갑자기 마르크스 이야기를 꺼냅니다. 마르크스야 말로 모던화(modernization)를 가장 잘 설명한 사람이라고 추켜 세웁니다. 이 때의 하비 교수는 이제 더 이상 "사회정의와 도시"를 썼던 하비가 아닙니다. 1973년의 데이비드 하비 교수는 이제 겨우(?) 40이 되지 않은 아주 젊고, 이제 막 마르크스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교수였습니다. 1989년의 데이이드 하비는 1982년 이미 '자본의 한계'라는 책을 집필한지도 제법 시간이 지난 50대 중반의 교수였습니다. 그리고 75년과 76년 파리로 안식년을 갔을 때를 제외하면, 매년 마르크스를 가르쳤습니다. 이제 하비 교수는 '사회정의와 도시' 때의 하비 교수가 아니고, 어엿한 마르크스주의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학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겠지만, 마르크스도 "경제학 철학 수고"를 썼을 때의 젊은 마르크스가 있고, "자본론"을 집필할 때의 성숙한 마르크스가 있습니다. 젊었을 때 마르크스는 경제학자보다는 철학자에 가까웠고, 자본주의가 인간 본성을 어떻게 소외시키는지 관심이 많았습니다. 마르크스가 생각했을 때 인간의 본질은 노동(labor)이라고 봤죠. 꿀벌의 노동과 인간의 노동이 다른 이유는 오직 인간만이 일을 할 때 '설계도' 같은 것을 그려놓고 한다는 것이죠. 자연을 이용해서 자신의 머리 속의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에서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의 성격이 바뀝니다. 임노동, 즉 화폐와 노동을 교환하기 시작하면서 구체적 노동(concrete labor)이 추상적 노동(abstract labor)으로 변해버리는 거에요. 여기서 추상(abstract)라는 말에 주목해주세요. 간략하게 말하자면, 구체적 노동은 '좋은 노동'이고 추상적 노동은 나쁜 노동입니다. 노동자들은 이제 전체 생산구조에서 자신이 어떤 부분을 어떻게 기여하는지, 전체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노동은 인간을 소외시키고, 인간성을 파괴시킵니다. 마르크스가 처음에 주목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인간성'과 '소외' 그리고 '노동'의 복합 관계였던 것 같아요.

세월이 흐르고 마르크스가 이제 혁명이 어렵겠다고 포기하고, 대영도서관에서 자본론 집필에 몰두합니다. 마르크스는 스스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자본주의를 철저히 해부하고자 합니다. 이 글에서 설명했듯이, 마르크스는 이론가 답게 자신의 설계도를 먼저 제시해놓고 '자본'을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데이비드 하비에게 있어서도 이 설계도 '요강'(또는 그룬트리세 Grundrisse)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사상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초같은 것이었기 때문이에요.

마르크스 이후 마르크스 사상은 수많은 반론, 변화, 발전을 하게 됩니다.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에 이어 소련에서는 공산주의 국가 실험을 하기도 했고, 중국에서는 개혁 개방과 함께 공산주의를 시행했고, 우리 바로 윗쪽에 있는 나라에서는 1인 독재에 기반한 공산주의를 시행했죠. 1968년에는 우리가 이미 여러 번 다뤘듯이 68혁명이 있었어요. 이들은 나중에 폭력적인 성향을 띄기도 했지만, 전쟁 반대, 미국 반대, 퀴어 운동(queer movement), 인종 시위 등 공통점이라고 보기 어려운 다양한 요구들을 사회에 하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자본가와 노동가로 나눠지고, 노동자가 자본가를 이기기만하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기반으로 공산주의 사회로 이행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다양했어요. 이미 살펴봤지만, 비트겐슈타인에 영향 받은 료타르 철학자들은 언어를 무기로 하여 근대철학의 기반을 뒤흔듭니다. 그람시는 마르크스의 환원주의를 비판하고 문화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오스망 프로젝트가 근대성의 신화를 만들어냈다면, 이제 '미국 대도시의 삶과 죽음>과 같은 책을 쓴 제인 제이콥스와 같은 작가들이 주목 받습니다.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이, 전체보다는 부분이, 중심보다는 탈중심이 대세가 된 시대가 된 것이죠. 이와 같은 변화를 '시공간 압축'에 의한 문화적 변동이라고 보는 것이 바로 데이비드 하비의 관점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지만, 이 책의 논지 자체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 책이 가지는 의의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 책은 데이비드 하비가 지금과 같은 인기(?)를 구가하게 해준 책입니다. 물론 학문적으로는 모두 뛰어난 책이지만, 이 책만큼 많이 읽히거나 팔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공간 압축'이라는 짧고 강력한 워딩으로 하비는 자신의 사상을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죠. 데이비드 하비 하면 사실 '시공간 압축'과 '공간적 조정' 두 단어로 압축됩니다. 짧지만 강력한 워딩이죠. 써먹기 좋구요.

하지만, 세상 이치는 아주 단순합니다. 이해하기 쉬우면 비판하기도 쉽죠.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문화 변화의 기원에 대한 탐구(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 An Inquiry in the Origins of Cultural Change)는 90년대에 여러 차례 재출판된 베스트셀러였으며 The Independent 에서 1945년 이후 출판된 가장 중요한 논픽션 작품 50선 중 하나로 선정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하비 교수의 엄청난 박식함입니다. 그는 플로베르와 보들레르를 인용하고, 푸코와 료타르, 비트겐슈타인을 요약하며, 온갖 정치경제 사건들에 대한 해석을 늘어놓습니다. 그러한 모든 예시들은 물론 자신의 주장을 여러 각도록, 그리고 그의 표현에 의하면 '역사지리적 변증법'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이 책에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해석이 나오는데, 영화매니아라면 한 번쯤 곱씹어 읽어볼만 합니다.

이 책에 대한 사소한 불만 중 하나는 여성 나체가 찍힌 광고 혹은 사진을 수록한 것입니다. 물론 흑백이고, 지금 관점에서 보자면 엄청나게 노골적인 사진은 아니고, 또 철학적 의도를 가지고 수록한 것이 명백하지만, 일부 독자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소위 '포스트모더니티'를 다룬다는 책이 '젠더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불편함을 호소한 독자가 있었습니다.(관련 글)

로버트 베스트라는 사람에 따르면 하비의 책은 생태학과 정치를 누락했다고 말합니다. 하비에게는 계몽주의의 생태학적 측면을 간과하고 있으며, 포스트모던 이론과 환경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지요. 마르크스 사상은 아무리 뭐라해도 결국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이며, 이와 같은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은 그것이 사회주의가 되었든, 자본주의가 되었든 생태적 위기를 초래한다는 입장입니다.

게다가 '정치'의 문제 역시 지적됩니다. 문화변동의 '조건'이 시공간 압축이라고 합시다. 그래서 하비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 책은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기 역시 문제가 됩니다. 1972년을 기점으로 자본주의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알겠습니다. 확실히 브레튼우즈체제도 붕괴하고, 케인즈 처방도 안 먹히고, 우울해지기 시작한 시기였죠. 1980년대에 약속이나 한 듯이 보수정권이 미국과 영국에 세워진 것도 우연은 아닐 겁니다.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회변동에 대한 설명은 그럴듯한데, 그것이 '포스트모더니티'라는 문화현상으로 옮겨진 부분에 대한 설명은 결국 느슨하게 남아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의 원조격인 니체, 그리고 비트겐슈타인, 료타르 등은 확실히 1970년대 이전에 이런 포스트모더니티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72년의 산물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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