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문해력에 대한 변명: 한국어는 얼마나 멍청한 언어인가.

2024-12-01 02:18:11 | 조회수: 13 | 좋아요: 0

일본사람들이 영어 발음이 좋지 않다거나, 영어를 능숙하게 잘 못한다는 것에는 그만한 excuse가 있는 것처럼 보여요.

왜냐하면, 일본어로도 충분히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히라가나는 우리의 '한글'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중국 문명은 한자로 소화할 수 있고, 영어는 가타카나로 일본어화해버리거든요.

이런 삼중의 언어체계가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조금 복잡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죠. ...그런데 지식의 체계 관점에서 보자면, 한자문명을 기반으로 한 선조와 쏟아지는 서양의 개념들을 처리하기 위한 대책으론 최적의 대책이었다고 봐요. 대신에 일본어는 '쉬움'을 포기한거죠.

한글이라는 아름답고 과학적인 소리 글자가 우리에게는 있죠. 덕분에 우리도 한국어로 사고할 수 있는 도구가 생겼어요. Thank you, 세종대왕님. 하지만 여기엔 몇 가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이 있어요.

과거 우리나라 모든 문서들은 한자로 되어 있었어요. 한자를 모르면, 사실상 우리는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 문맹 상태로 살게 된다는 거죠. 한글이 '쉽고' 많은 사람을 문맹에서 구출해낸 대가로, 우리는 거의 모든 사람이 한자와 단절된 삶을 살게 된다는 대가를 치룬 거죠.(이 고민은 간체자를 만든 중국에서도 비슷하게 있을 거에요.)

다른 한 편으로 우리가 보는 세계는 영어로 대통합되어 있어요. 우리는 한글로부터 과거와 단절되었는데, 이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영어를 잘해야 하는 숙명에 놓이게 된 거죠.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해요. 영어와 한국어는 당연하게도 1:1 매칭이 안된다는 거에요.

예전에 제가 한 글에서 썼듯이, spatial fix 를 '자본의 한계'(Limits to captal)를 번역한 최병두 교수님의 번역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공간적 조정'이라고 번역하는데, 하비 교수가 2001년에 어떤 논문에서 밝혔듯 fix는 중의적 의미에요. 하나는 '고치다'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고정하다'라는 의미가 있어요. 문제를 '해결하다'라는 뜻도 있죠. 어떻게 번역해도 그 뜻으로 번역할 수는 없어요. 이건 한국어가 영어가 아니니까 생기는 근본적인 문제이기도 하거든요.

resilience란 단어가 소비된 지도 이제 꽤 되네요. 캠브리지 사전에 찾아보면 '힘든 일을 겪고 난 이후에 다시 행복해지는 능력'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런 단어가 한국에 있나요? 그러니까 이런 단어들은 학자나 저술가들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에요. 누구는 "회복탄력성"이라 번역하고, 요즘은 짧게 '회복력'이라고도 번역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논문에서 이 문구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재생"이라고 번역했었는데, 이 번역은 너무 평범하고 구리죠.

사람의 상태를 묘사하는 말로 vulnerable 이라는 말 많이 쓰는데요. 이거 한국말로 뭔가요? 저는 중3때 이 단어를 처음 접했는데 제가 접한 해석은 진짜 충격이었어요. "취약가능한" 바로 욕이 나왔죠. What the hack? 도대체 이건 뭔 개소리야. 도대체 나는 왜 이걸 외워야 하는 거야. 갑자기 이런 말을 쓰니 그 때의 나로 돌아가서 이걸 가르쳐주고 싶네요.

vulnerable 사람이 마음이 약해진 상태를 의미하는 건데,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완전 무너졌다는 것은 아니고, 좀 마음이 말랑말랑하고, 약간 센치해보이기도 한 그런 상태를 의미하는 거야. 누가 한 대 툭 치면 울 거 같은 거 있지? 그럴 때 He seems vulnerable. 이라고 해. 실제로 사람의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서 많이 쓰는 말이니 알아두는 게 좋아. 라고 말할 것 같아요.

고1 땐가? sophisticated 라는 단어를 외웠어요. 물론 complicated 란 단어도 알았죠. 둘은 다른 단어에요. 근데 두 단어를 저는 '복잡한'이라고 외웠어요. 나중에 Friends에서 sophisticated 란 단어를 듣고 기절할 뻔 했어요. 왜냐하면.. '복잡한'이라는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sophisticated 는 사람을 묘사할 때 역시 많이 쓰던데, He is good-looking, smart, and sophisticated. 이런 식으로 많이 쓰더군요. 그는 잘 생기고, 똑똑하고, 세련되고... sophisticated는 '세련되다'라는 뜻이었고, 옛날 기준으로 한영사전에 sophisticated에 세련되다는 뜻은 없었어요.

complicated는 '복잡하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말하기 싫다', '설명하자면 길다'는 느낌으로 많이 쓰더군요.

A: What happened to you?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B: It's a long story, so complicated. 설명하자면, 길어. 엄청 복잡한 이야기야.

갑자기 왜 영어 이야기를 꺼내냐면, 한국어와 영어는 절대로 일대일 대응이 안된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싶어서에요.

그런데 정말 놀랍고도 재밌는 사실은 이제 한국어가 영어화되어 가고 있다는 거에요.

한 20년 쯤 전인가? 저는 어떤 여성에게 이런 말을 처음 듣습니다.

나 걔랑 깼어. I broke up with him.

이 표현 정말 신선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영어의 "깼다"의 직역에 가깝더군요.

걔 바이브(vibe) 너무 좋아.

이런 표현도 씁니다. 이 쯤 되면 이게 한국어인지 영어인지 헷갈릴 지경이에요. 조사랑 어순만 빼놓고 나중엔 다 영어 단어로 교체해서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이것은 나쁘게 말하면, 일종의 식민주의 colonialism 이나 제국주의 imperialism 의 유산이라고도 볼 수 있을 거에요.
현대로 올 수록 강압적 통치보다는 문화적 통치가 훨씬 더 잘 먹히거든요.

우리 국사 시간에 일본이 식민정책을 3.1 운동을 기점으로 무력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바꾼다는 거 배웠잖아요? 그런 개념들이 사실 다 어느 정도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의 개념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증거라고도 볼 수 있어요.

한국어를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들어요.

하나는 21세기에 한국어 쉽지 않겠다. 전 세계의 수많은 지역어들은 많이 사라지고 이제는 언어가 몇 개 남지 않은 상황이에요. 한국어 역시 대단한 언어죠. 남한과 북한, 그리고 교포들, 그리고 전 세계 K 문화로 한국어 배우고 싶어하는 인구까지 합치면 이렇게 맹위를 떨치는 언어는 흔치 않을 거에요. 하지만 한국어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있을까? 한글로 제대로 '생각'을 전달할 수 있을까 라는 부분에 있어서 점점 회의적인 생각이 들어요.

제가 컴퓨터에 대한 책을 썼잖아요? 어느 순간이 되면 한국어로 어떤 말을 번역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져요. 이 개념은 아예 한국어에 있지가 않아요. 정규식? 정규식이란 말을 들으면 우리는 사람 이름인 줄 알죠. regular expression 의 번역어에 불과해요. 정규식은 엄청 쉬운 개념인데, 컴퓨터에서 문자를 검색하는 규칙을 의미해요. 어느 순간이 되면 한국어에는 그 개념이 없고, 영어만 있는 상태가 되요. 그러니까 IT 업계에서는 특정 용어는 그냥 영어 단어로 교체해서 쓰는 것이 일반적이죠. 그러다 보면 한국어에 있는 개념도 영어로 교체해서 쓰고.... 결국 그러다가 보면 한국어를 쓰지 않고, 장기적으로 한국어 단어 대부분을 영어로 교체해서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하나의 생각은 한국어로 사고를 하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요즘 문해력(literacy)에 대한 이야기가 많잖아요. 사흘이니 나흘이니 모른다고 하고, 또 '심심한'의 뜻을 모른다고 뭐라 하고...

가끔 가다 보면 한국어가 굉장히 비효율적인 언어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영어로 사다는 buy, 팔다는 sell 이잖아요. 우리는 '매도', '매수'라는 어려운 말을 써요. 매도는 판다는 것이고, 매수는 산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말을 쓸 때마다 헷갈리죠. 바이, 쎌, 얼마나 쉬워요. 초성부터 다르잖아요.

심심을 한국어로 쓸 때는 boring 이란 뜻이고, 한자로 쓰면 '깊은'이란 뜻이죠. 솔직히 구어로 쓰지도 않는 말이잖아요. 이걸 두고 문해력 어쩌구 하는 것은 '한국어를 좀 더 정교하게 만들어서 전달해주지 못한' 기성세대의 잘못도 크다고 봐요. 애초에 system 이 엉망인데, 엉망인 시스템으로 아이들을 가르쳐놓고, 아이들에게 문해력 탓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요.

고민의 핵심은, 한국어를 얼마나 체계적으로 정교화해서 다음 세대에 물려줄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들 먹고 살기 바쁜데 누가 이런 고민을 하나요? 다들 고민을 잘 안하죠. 고민을 안 할 수 밖에 없어요. 나라도 안 하죠. 하지만, 누군가는 고민을 해서 한국어를 쓰기 좋게, 읽기 좋게 바꿔야 해요. 어쩌면 '국립국어원'과 같은 국가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기도 하죠.

여기에 대해서 몇 가지 생각해 놓은 게 있는데, 나중에 시간 되면 더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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